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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것인가, 죽어가는 원자력 산업을 구할 것인가?

허성원 변리사 2019. 11. 17. 21:53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in Okuma, Fukushima prefecture, Japan, May 26, 2012.>


나는 탈원전주의자이다. 기회만 나면 탈원전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관련 자료를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이런 나의 생각이나 활동을 불편하게 여기는 친구나 지인들이 주위에 여럿 있다. 원전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직접 이 문제로 논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들의 불평을 직간접적으로 듣고 있다. 언젠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를 위해 내 생각을 간단히나마 정리해둔다.

내가 탈원전을 주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이유 때문이다. 원전이라는 것은 일단 사고가 한 번 일어나면 최소한 반경 50km 이내는 초토화된다. 우리나라 월성 원전의 반경 50km 내에는 500만명 이상의 인구가 밀집하여 있다.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원전 사고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은 수차례 증명되었었다. 체르노빌, 스리마일, 후쿠시마 등의 사고는 전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현장은 언제 다시 예전의 환경으로 되살아 날 수 있을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원전들에서도 알게 모르게 수시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언론이 쉬쉬하고 있어서 그렇지 일본이나 미국 등의 원자력 관계자들은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원전은 알려진 만큼 경제적이지 못하다. 발전소 건설비용도 엄청나고 그 유지 비용도 안전 유지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용도를 다한 원자로의 어마어마한 폐쇄 비용이다. 

원자로 유지 비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선 준위가 매우 높아 자연에 노출되면 인간 등 생물체에 재앙을 안겨다줄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다. 이 핵폐기물은 초기에는 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냉각수를 공급하여 식히고 50~60년간 중간 저장을 한 다음, 방사선의 방출이 충분히 감소될 때까지 짧게는 10만년 길게는 100만년 동안 지진이 없는 곳에 안전하게 격리시켜야 한다. 폐기 핵연료의 방사선은 삶고 굽고 태우고 지지고 볶는 등 무슨 방법을 써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세월만이 그것을 줄일 수 있다(반감기가 원료에 따라 수십~수백년). 인류는 아직 이 고준위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튼튼한 용기에 담아 지진이 없을 것 같은 지역에 저장해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지구 상의 어떤 소재로 된 용기가 10만년 이상 물리화학적으로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가둬둘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꼼짝않고 안전히 유지될 폐기물 저장 부지는 어디서 구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굴업도가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되었지만, 그곳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어 백지화된 후 부지를 찾지 못해, 현재로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아마도 폐기된 원자로 시설이 무한정 끌어안고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니 그 지역 주민들의 반발 조짐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 세계적으로 약 450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기가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신규 건설되고 있거나 계획 중인 원전의 수도 적지 않다. 원전의 위험과 미래 비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눈앞의 전기 에너지 확보를 위해 손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매 끼 밥을 짓기 위해 서까래를 하나씩 빼서 땔감으로 쓰는 꼴이다.

그런 한편으로 탈원전을 선도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원전 19기의 가동을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고, 내친 김에 지금 독일 전기의 40%를 점하는 석탄화력발전소 84기도 2038년까지 완전 폐쇄하기로 했다. 대단히 부러운 일이다. 독일은 현재 수력,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약 40%에 달하는데, 2040년까지 65~80%로 높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외에도 미국이 2025년까지 18기를 폐쇄할 것이라고 하는 등 원전의 확산 기류는 세계적으로 점차 억제되고 있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의 효율이 드라마틱하게 높아지고 있어, 원전이나 화력발전의 효율을 실질적으로 뛰어넘었다고 한다.

모든 산업은 불가피하게 흥망성쇠를 겪는다. 영원히 번성하는 산업을 본 적이 있는가? 원전 산업도 다른 산업이 겪은 숙명을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숙명의 피해를 지금 내가 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더 큰 미래를 생각한다면, 원전과 원자폭탄을 포함한 원자핵 산업은 인류를 살리고 지구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산업이다. 원전산업을 어찌 살려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와 같다. 그 죽어가는 산업을 살리자고 우리 후손이 언제까지나 살아가야할 이 지구를 핵연료 폐기물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원전 산업에 관계하고 있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는 내 주위 지인들에게 이 격변의 기류를 잘 읽고 비즈니스의 선택과 변신에 성공하시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그레고리 얀코 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지구를 구할 것인가, 죽어가는 원자력 산업을 구할 것인가. 이제 원자력은 금지되어야 한다”